뉴네이션 가족 여러분,

주님께 ‘고백’한다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슬픈 감정이 일어납니까? 울음이나 죄책감이 듭니까? 아니면 수치심과 실패의 감정이 생깁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배’를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 드는지요?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진실한 고백을 한 것이 언제였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실패를 시인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희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롬 2:4)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백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자백하도록 인도되어져야 한다고 말합니까?
느헤미야 9장은 그 질문에 답하는 방법을 잘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서 금식하고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을 때 제사장들이 그 고백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진정한 죄의 고백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진정으로 인식하기 전에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충실할 것을 약속했지만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이스라엘 남자들은 이방 여자와 통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충실했고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먼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인정하고 외치고 경축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고백의 이유가 나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볼 때에야 비로소 우리 죄의 무게와 그 결과 우리가 받을 형벌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고백의 제단으로 이끌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확신이 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에만 올 것입니다.
삶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십시오. 이 패턴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반성하고 고백하는 순간에도 당신의 눈이 하나님께 굳게 고정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지 못하는 순간은 우리 죄의 죄성을 보지 못하는 순간이며, 이는 우리가 고백의 필요성을 잊어버리기 전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에 카톡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며 묵상하십시오. 토요일 새벽 6시 반에 교회 예배당에 나와 기도하며 주님의 임재를 맛보십시오. 주일날 자녀들과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며, 하나님께 나의 눈을 고정하며, 고백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분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시고, 어떻게 고백하게 할지 알려 주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