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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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Silicon Valley Christian Church (Kifer + Monroe)
    시간: 매주 목요일 12시. 점심 식사하면서 같이 말씀을 나눕니다.

    갈라디아서 1장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10절

    바울 서신서의 처음 갈라디아서.
    첫 1장 1절부터 10절 까지는 뻔한 내용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유대주의자들이 들어가서 갈라디아 교회에 만연한 유대주의적인 복음이 들어가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사상이 들어갔습니다.

    (1절) 사람들은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증거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 직접 가르친 사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직접 만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합니다.
    사도라는게 왜 중요한것입니까?
    마태복음 10장에서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것이요, 나를 영접하는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2절) 모든 형제와 더불어에서 형제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보혈을 나눈 형제 자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절) 기독교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 은혜로 주어지는 평강입니다. 누구에게 주어진?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그럼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사, 아빠 하나님이라 부를수 있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보내 주셨기에 아빠라고 부를수 있습니다.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여야 합니다. 믿음의 고백을 함께 나누는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들의 모임. 그 모임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혼자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믿음의 선배들로 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 (큐리어스), 예수님이 주이면, 우리는 종입니다. 이 큐리어스는 이 당시 로마 황제에게 쓴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황제이십니다. 나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주님의 통치하심을 받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요, 출애굽기 4장에, 야훼라는 표현은, 창조자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자 ( I am who I am), 이 와 같이 신약시대로 오면서 사용한 말은, 큐리어스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말입니다. Church 크루크: 이 표현은 큐리어스에서 온 말입니다. 독일에서는 키르케 등등, 큐리어스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church 교회입니다.
    고린도 전서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수 없느니라.
    카이제르 큐리어스? 시저는 나의 주님 이십니다라고 로마 병사들이 묻는 표현이 있습니다. 로마병사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를 따라하면, 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주와 그리스도, 사도바울이 쓴 처음의 서신서에 쓰인 표현이기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표현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 즉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수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덧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었입니까?
    그이유가 바로 4절입니다.

    (4절)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이 악한 세대라는 표현은, 즉 악하지 않은 세대가 있다라는 것. 즉 재림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 악한 중에도 천국의 시대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축복을 갖게 하시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놀라운 계획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2절을 보면, 이 세대에 대한 표현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와의 갈등, 세대의 가치관에 차이에 따른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칼바르크는 이러한 거룩한 충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 보면) 우리 삶이 이렇게 살면서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세번째 이유는 4절에 나온것은, 바로 속죄 입니다.

    (6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정말 놀랬다. 다른 복음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라는 것은 같지만, 할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도 이러한 다른 복음도 있었습니다. 그 예가, Relativism, 상대주의즘이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혼합주의 등등, 번영신학(Prosperity), 조엘오스틴 목사님이 전하는 설교에서는 바울의 고난을 얘기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번영신학을 보면, 성경 지식은 있지만, 뽑아놓은 Package는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7절 보면) 복음은 딱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말은 우리가 추구하는 Prosperity가 없어도,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에서) 이 본질이 훼손이 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신 부분이 없습니다. 그만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전에 강조되어야 하는것이 복음과 믿음입니다. 복음을 왜곡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다 포용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수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 진리적인것에는 포용하면 안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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