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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6일 2:02 오후 #9146
newnation
키 마스터11/02(화) 새벽 말씀
제목) 참된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본문) 욥기 16:1-22
(말씀 듣기)산호세-뉴네이션교회-11-02화-새벽-큐티-참된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된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참된 위로자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늘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욥을 위로하기는 커녕 도리어 욥에게 고통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욥이 말합니다.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여기 보시면 “재난을 주는 위로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하면 고통을 주는 위로자! 근심을 더하는 위로자! 슬픔을 더하는 위로자! 아픔을 더하는 위로자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떤 위로자입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참된 위로자입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주고, 힘을 주고, 도움을 주고, 살 소망을 주는 위로자들입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런 위로자들이 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요. 실상 우리 주변에서 그런 위로자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깊이 공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는 것은 원하지만 위로를 잘 할줄을 모릅니다. 아니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위로의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오늘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에 대해 진노하셔서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그를 찢으시며 대적하신다고 말하지요. 그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한 자신의 처지를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쁄을 티끌에 더럽혔구나”(욥 16:10). 여기 욥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그의 고통과 탄식을 나타냅니다. 여기 내 쁄이라는 표현은 자신의 힘 혹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지금 욥이 고백하는 거지요. 자기는 이제 아무런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존귀함도 없고, 명예도 다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요. 오늘 본문에서 욥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17절에 보시면,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그러지요. 그리고 19절에 보시면,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여러분 여기 나오는 중보자를 다른 번역에 보니까 변호인 그렇게 되어있어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욥은 자기가 무죄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는 겁니다. 그분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변호인과 중보자가 되셔서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고해주실 분이신 줄 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지 않습니까? 그분은 바로 부활 승천하사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사탄은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날마다 참소하지요. 우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우리를 죽여야 한다고 참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변호해 주시는 겁니다. “아니다! 저 사람은 무죄이다! 왜냐하면 내가 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무죄이다!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을 다 들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기독교의 진리잖아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할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께 기도할수 있습니다. 지금 욥은 그분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그 분의 이름은 몰라요.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해 주실 중보자께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알수 있나요? 언제인지는 몰라요. 그러나 욥은 그 중보자로 인하여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참된 하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인생에 참된 위로자가 되시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 인생의 참된 위로자가 되십니다. 우리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오늘도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게 임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가장 잘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형편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는 분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날마다 기도할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 예수님 주님께서 우리를 날마다 변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들이 세상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때 우리 마음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하늘의 위로와 능력을 덧입고 다시 얼어나 전진하는 주의 백성들이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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